풍물의 숨, 우리의 밭: 풍물콘서트 [숨 밭]
2024년 11월 11일 월요일, 늦가을의 바람 속에서 순천문화예술회관 대극장은 생동감 넘치는 북소리와 흥겨운 상모놀이로 물들었다. 순천문화재단의 창작예술지원사업으로 열린 2024 풍물콘서트 ‘숨 밭’은 이름 그대로 우리 전통 예술이 숨을 쉬며 뿌리를 내리는 특별한 무대였다. 사단법인 문화공간 소리골남도가 주관한 이번 공연은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오늘날의 풍물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고민을 담아냈다.
이 공연의 중심에는 소리골남도의 배양순 이사장이 있다. 풍물에 매료되어 2005년 단체를 창단한 그는 20년 동안 묵묵히 풍물의 길을 걸어왔다. 그와 함께 무대를 빛낸 네 명의 연주자는 오랜 벗이자 굿판에서 함께 고민을 나눈 동료들이다. 배 이사장은 그들을 두고 “각자의 환경에서 자신의 내면과 이야기를 받아들이고 풀어낸 친구들”이라며 자랑스러움을 표했다.
공연의 주제는 ‘풍물잽이가 만들어가는 터’였다. 풍물판은 단순한 무대가 아니다. 우리 삶과 정서가 녹아 있는 터전이며, 그 위에서 살아 숨 쉬는 전통은 오늘날의 고민과 해석을 통해 재창조된다. 과거를 잇는 현재의 풍물이 미래를 그려낼 수 있음을 이 무대는 여실히 보여주었다.
공연의 시작, [풍장24]
첫 무대를 장식한 ‘풍장24’는 전라남도의 무형유산인 거문도뱃노래를 바탕으로 재구성된 작품이다. 거친 바다와 맞서며 삶을 꾸려온 어부들의 노동의 소리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이 작품은 고사소리와 술비소리에서 풍장소리로 이어지며 점점 고조되었다. 사물악기의 리듬감과 함께 대금, 피리, 가야금의 협주는 청중들에게 진한 감동을 선사했다. 삶의 고된 현장에서 피어난 소리에는 흥과 한이 오롯이 담겨 있었고, 이는 듣는 이의 마음에 깊은 여운을 남겼다.
[전통의 정수와 기예의 아름다움]
이날 무대는 각 연주자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전통을 재해석하며 풍물의 다채로운 얼굴을 보여주었다. 특히 정동찬의 ‘전라 좌도굿 부들상모 쇠놀이’와 홍진기의 ‘설장구놀이’는 지역성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전통 호남 좌도농악의 부들상모놀이에서는 전조시와 퍼넘기기 같은 기술이 가락과 어우러지며 전통의 매력을 뽐냈다. 한편 정읍 태생인 홍진기의 설장구놀이는 까치걸음으로 표현된 세산조시 장단이 독창적이었다. 굿거리와 자진모리 장단 속에서 연주자는 선조로부터 전수받은 독특한 리듬을 되살렸다.
다음으로 김계진의 ‘선반 사물 부포상모놀이’와 이동헌의 ‘채상소고놀이’는 기술적 기예와 몸짓의 조화로 무대를 압도했다. 특히 채상소고춤은 풍물판의 군무에서 독무로 발전하며 독특한 화려함을 더했다. 전통에 기반을 두되 경기와 영남의 춤사위를 가미한 이동헌의 공연은 전통이 고립된 것이 아닌 열린 창조임을 입증했다.
흥과 멋, 우리의 흙내음
‘둥덩애’와 마지막을 장식한 ‘사물판굿’은 흥겨운 마당이었다. ‘둥덩애’는 전라남도의 토속민요로, 해학적 가사와 소고 춤사위를 통해 삶의 애환을 흥으로 풀어냈다. 사물판굿은 잽이들의 진법놀이와 개별 기량이 돋보이는 대미를 장식하며 관객들의 환호를 받았다. 채상모와 부포상모가 빚어낸 화려한 몸놀림, 너름새로 펼쳐지는 진법놀이는 풍물의 매력을 극대화시켰다.
기자의 시선: 전통이란 무엇인가
공연을 보며 문득 ‘전통’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전통이란 단순히 과거의 흔적을 모아 둔 박물관 속 유물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움을 더하며 살아 숨 쉬는 존재다. 풍물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민족의 이야기이며, 아픔과 기쁨이 담긴 역사다.
이날 공연은 전통이 과거에 머물지 않고 오늘날의 고민과 만날 때 비로소 살아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각자의 환경 속에서 풍물을 삶으로 받아들이고 고민한 연주자들의 무대는 단순한 공연을 넘어선 메시지를 던졌다. 이들의 열정과 노력은 우리가 전통을 대하는 태도에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끝맺음: 숨, 그리고 밭
‘숨 밭’이라는 이름처럼, 이번 공연은 전통 풍물의 숨결이 끊이지 않고 밭을 일구며 새 생명을 틔우는 과정이었다. 풍물판은 단순히 과거의 재현이 아닌, 오늘의 이야기로 채워지는 살아 있는 공간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순천이라는 도시에서 이러한 무대를 만들어내는 이들의 노력은 지역 문화의 뿌리를 더욱 튼튼히 다지는 원동력이 된다.
이날 공연은 풍물의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를 고민하게 만드는 귀중한 시간이었으며, 지역 예술이 가진 가능성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풍물은 살아 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숨, 우리의 밭이 될 것이다.
📍 2024 순천문화재단 홍보 기자단 / 서민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