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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동백꽃처럼 남겨진 이들의 가슴에 피어난 10.19 여순사건 추모전야제
  • 서민주
  • 2024-10-30 오후 2:4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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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처럼 남겨진 이들의 가슴에 피어난 10.19 여순사건 추모전야제

 

76주기를 맞이한 10.19 여순사건 추모전야제가 청소년수련관 무대에서 거행되었다. 행사에 모인 사람들은 가슴에 각자 손뜨개 동백꽃을 달고, 여순사건의 아픔을 기리는 진지한 마음으로 추모의 시간에 함께했다. 한쪽에는 여순사건을 상징하는 동백꽃을 주제로 한 체험 부스들이 마련되어, 동백꽃 드로잉 머그컵, 모자이크 컵받침, 카드 지갑, 아크릴 키링 등 다양한 체험 활동이 제공되었다.

 

추모전야제에 동백꽃이 사용된 이유는 현장에서 발견한 배너에서 설명되었다. 여순사건 당시 희생된 영혼들이 붉은 동백처럼 차가운 땅에 쓰러져 갔음을 상징하는 꽃이 바로 동백꽃이라는 설명이었다. 과거 우리 역사에서 아픈 비극으로 남은 사건을 뜻하는 이 꽃은 단순히 하나의 꽃이 아니라 슬픔과 고통을 담고 있으며, 우리로 하여금 그날을 기억하게 만드는 상징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여순사건의 무게를 깊이 이해하지 못했던 20대 시절이 떠올랐다. 여수와 순천에서 억울한 죽음이 있었던 사건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나 자신을 되돌아보며, 그 역사를 외면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의 마음이 들었다. 이러한 추모 행사에 참석하며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가 무엇인지 되새기고, 앞으로는 어떤 자세로 이를 후대에 전해야 할지 고민하게 되었다.

 

이번 추모전야제는 국립순천대학교 학생사회봉사단 이실직고팀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10월에 핀 동백] 상영으로 시작되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학생들이 여순사건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제작한 프로젝트로, 교과서에는 실리지 않았지만 꼭 기억되어야 할 역사를 영상으로 담았다. 다큐 상영 후, ‘이실직고팀의 최찬미 팀장은 프로젝트 시작의 계기를 설명하며, 여순사건의 진실을 더욱 많은 학생에게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여순사건의 희생자들은 유해조차 찾기 어려워, 결국 "형제묘"라는 이름으로 한곳에 모셔져 있다. 우리가 자주 오가는 순천의 동천은 과거, 아무 말 없이 희생된 이들의 피로 붉게 물들었던 강이었다. 순천여순사건 유족회의 조선자 상임이사는 인사말에서 많이 내리는 이 비가 요즘 억장이 무너지는 우리 유족들의 눈물 같다, “제삿날이 돌아와도 아버지 묘가 없어 가묘에 성묘할 뿐이다. 특별법이 시행된 지 3년이 되어가지만, 제대로 이루어진 것이 없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조선자 상임이사는 하루가 멀다 하고 유족들의 부고 소식이 들려오지만, 정작 나라로부터의 소식은 애타게 기다려야 하니 답답하고 원망스러울 뿐이라며, 여순사건 특별법이 제대로 시행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본 행사에서는 순천시립소년소녀합창단과 평화를 염원하는 순천시민 합창단의 공연이 펼쳐졌고, 순천 YMCA와 한국무용 퍼포먼스, 어뮤즈 앙상블의 무대가 이어졌다.

 

특히 평화염원 순천시민합창단은 여순사건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평화의 메시지를 널리 전파하고자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 가능한 프로젝트 합창단이다. 기존의 합창단이 공연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번 여순사건 추모 전야제는 여순사건의 역사를 기억하고 이러한 문화예술교육활동을 통해서 여순사건에 대해 알고싶고, 추모하고자 하는 마음들이 모여 8살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시민 70여명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4주간 8회에 걸쳐 함께 부를 곡을 연습하고 무대에 올라 유족들을 위로하는 공연을 펼쳐 더욱 의미가 깊었다.

남녀노소 모두가 함께 노래를 배우고 여순사건을 통한 평화와 화합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취지로 기획된 평화염원 순천시민합창단의 공연으로 역사적 교육이 아닌 지역 사회가 공감할 수 있도록 시민들로 구성된 문화예술의 접근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더욱 가치가 두드러진다.

마지막으로는 모든 참석자가 함께 홀로 아리랑을 부르며, 아픔과 그리움의 마음을 담아 전야제를 마무리했다.

 

이번 행사와 같은 추모제를 통해 문화재단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기회가 되었다. 사회적 기억을 지키고 전승하는 데 문화재단이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행사에서 받은 동백꽃 컵받침을 사용할 때마다 다시금 그날의 장면이 떠오르고, 그 속에서 배운 역사적 교훈이 마음속에 새겨진다. 동백꽃 컵 받침 같은 작은 체험조차 그날의 의미를 생활 속에서 떠올리게 하는 힘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일상 속에서 스며들어 사회와 사람을 변화시키는 문화의 힘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여순사건을 기억하는 다양한 매개를 통해 우리와 다음 세대가 잊지 않고 이 기억을 이어 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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