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창작예술지원 공모사업 선정작 '홀로서기' 공연 후기
평소 국악에 관심이 많았던 블로그 기자는, 마침 ‘순천문화재단 2024 창작예술지원 공모사업 선정작’으로 국악 공연이 있어 한달음에 달려갔습니다. 넓은 순천문화건강센터 다목적홀 전체를 대관한 행사는 사회자를 비롯, 장구, 아쟁, DJ&피아노의 4인이 전통음악과 타 장르간 융합을 꾀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사회자인 송효진 선생님은 첫 무대로 장구의 백은희 님을 소개하였습니다. 이 공연을 보러 백은희님의 남편과 시부모님이 와 계셨는데, 예술을 해야 살맛이 나는 사람들이 가족의 지지 속에서 예술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사실 지금도 예술행위를 ‘딴따라’ 등으로 비하하거나 ‘고생에 비해 정당한 처우를 받지 못하는’ 것도 서러운데 무시하는 경우들이 왕왕 있습니다. 그에 비해 가족들이 응원도 와 주시고, 스스로도 예술계의 명문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해 안정된 커리어를 쌓은 출연자가 자못 부러웠습니다. ‘홀로선 장구’라는 이름으로 두근거리는 장구 가락을 들려준 후 두 번째 무대가 이어졌습니다.
두 번째 무대는 배지현 출연자의 ‘홀로선 아쟁’ 무대였습니다. 거문고를 닮은 묵직한 몸체를 활로 그어 내는 깊은 소리의 아쟁을 능수능란하게 ‘요리’하는 그녀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가운데 출연자가 직접 쓴 랩 가사가 화면에 등장하고, 출연자가 직접 랩을 하는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나의 청춘은 딱 두 가지 and I’m proud 피와 땀방울 그거 밖에는 미련함 뼈를 깎는 아픔 극심한 모욕감 안에 깊은 무력감 또 그걸 딛는 일어남…(후략)’ 음악을 하는 고뇌와 어려움 그럼에도 나아가는 마음결 하나하나를 고스란히 담아내어 전율이 일었습니다. 아울러 슬픈 선율을 주선율로 하여 트레몰로 주법 및 정교하고 빠른 주법 등으로 다채롭게 구사하여 아쟁의 매력을 한눈에 보여주셔서 인상에 남았습니다. 타악으로 시작했다가 대학 때 아쟁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도 흥미로웠습니다.
세 번째 무대는 챕터 1과 챕터 2로 나뉘는 ‘파란만장’ 무대였습니다. 챕터 1은 백은희 출연자의 장구와 김주현 출연자의 신디사이저가 남과 여, 양과 음의 대립 속에 신선한 긴장을 보여주어 돋보였습니다. 캐리비안의 해적 및 안예은의 상사화 등 익숙한 선율을 본인들의 스타일로 변주하여 익숙한 듯 다른 듯 태연한 진행을 즐거이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챕터 2는 아리랑으로 시작해 장구주자의 잔잔한 음성의 노래가 곁들여져 듣기 좋았습니다. ‘홀로’라는 음악을 커버하면서 아리랑을 함께 엮어내는 솜씨가 돋보였습니다. 그와중에 사회자의 사회는 공연 전체 제목인 ‘홀로서기’를 묵상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홀로선다는 것은 단순히 혼자 산다, 독립의 의미라기보다 평범하게 혹은 비범하게 나아가는 것이며, 욕심 사납게 내가 나다라는 게 아니라 스스로 일어서 걸어가는 힘을 가지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첫발을 내딛는 아이는 그 한걸음이 뛰게 할 것이고 힘차게 날아가게 할 것이라는 단호한 음성이 내내 귓가에 남았습니다.
베토벤 교향곡 ‘운명’을 바탕으로 국악과 클래식, EDM이 조화되는 실험적 음악을 보여준 네 번째 무대 ‘운명(Destiny)’과, 앵콜곡 ‘순천연풍’을 끝으로 무대는 마무리되었습니다. 서양음악으로 가려했던 백은희 출연자가 장구의 덩 소리에 ‘심장을 관통한 우리 음악’을 들은 후 진로를 선회했다는 사회자의 부러움 섞인 멘트도 즐거웠습니다. ‘홀로 서 있는 우리는 예술에 물든 채 삶을 살아가는 청춘들’이라 일갈하며 ‘불어라 불어라 불어라 차차 불어라’ 노래하는 무대의 엔딩이 퍽 아름다웠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의아한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입구에서 별 모양의 응원봉을 나누어주기에 블로그기자는 갸웃했습니다. 현대 가수들의 콘서트도 아니었고, 국악 무대 특유의 분위기를 알기에 응원봉을 과연 어디에 쓰려고 그러는 거지?라는 물음이 절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국악을 현대 선율과 섞고, 신디사이저와 섞고, 랩까지 구사하는 무대인 만큼 별 모양 응원봉은 시종일관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국악의 그대로만을 재현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어떻게 하면 대중에게 호흡하며 다가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살아있는 공연’이라는 생각도 여러 번 들었습니다. 국악 안에 온전히 나를 녹여내고, 현재와 미래를 꿈꾸기에 이런 공연을 하실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취미삼아 즐거이 해금을 하는 블로그기자이지만, 이 분들만큼 제가 고민하며 국악을 대해왔나, 라는 생각이 들자 반성이 되기도 했습니다. 순천문화재단의 지원금으로 이 공연을 열었지만, 결국 그들이 꿈꾸는 것은 ‘홀로 자립해서도 가능한 공연 생태계’일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했습니다.
전통이기에 더 창조적으로 계승해야 하며, 실험과 혁신을 아끼지 않아야 함을 온 몸으로 공연으로 보여주신 ‘홀로서기’ 공연을 내내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순천문화재단의 지원사업이 이들의 꿈과 미래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되 예술가들의 자유로운 표현과 고뇌를 앞으로도 깊이 담아내는 통로가 되기를 응원하며 글을 마칩니다.